이번에도 어김없이 2주일 벼락치기 3개월의 피말리는 준비 기간을 지나 MPEG 기간이 다가왔습니다. 출장 준비 마지막 주간이 중간고사랑 정확히 겹치는 바람에 지옥을 보고 나왔습니다. 거의 1주일동안은 박○스와 우○사의 힘으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바 약물!)
이번 회기는 82차. 열리는 곳은 중국 심천 (선전, Shenzhen) 입니다. 홍콩 바로 건너편 본토에 위치한 대도시입니다. 그 입지로 인해 중국에서 처음으로 경제특구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바다 건너편 홍콩에 버금가는 엄청난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한번 갔던 항저우와는, 같은 중국이라고는 해도 거리가 한국 신의주에서 부산까지 거리보다 대략 두세 배나 떨어진 곳입니다. 이번에도 또다른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설렙니다. (그리고 아직 남은 일거리로 철야의 압박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아무튼. 아래는 이번 항공편 일정입니다. 일정상 토요일에 움직여야 하는데 토요일에는 국적기 비국적기 가리지 않고 아예 인천에서 운항이 없더군요. 부득이 홍콩으로 가서 바다를 건너게 됩니다.
(아래의 모든 일정은 현지시간 기준입니다.)
출국편 인천→홍콩 : 대한항공 KE613 / 10월 20일 15:35~18:05 홍콩→심천 : 육로 (밴) 또는 해로 (고속페리) 이동
귀국편 심천→홍콩 : 육로 (밴) 또는 해로 (고속페리) 이동 홍콩→인천 : 대한항공 KE604 / 10월 27일 12:25~16:55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박사과정 1년차가 마무리를 향하는 이 시점. 다녀와도 늘어질 수 있는 여유는 이제 없습니다만, 적어도 이번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간 쌓인 피로는 해소할 수 있겠지요.
이번 출국 장소는 위에 보시는 대로 스위스 로잔에 소재한 스위스연방공과대학교 (EPFL, Ecole Polytechnique Federale de Lausanne) 입니다. 작년에 출장 갔던 몽트뢰 (Montreux) 의 옆동네로, 제네바에서는 더 가깝고, 실제로 몽트뢰 출장 당시 열차를 타고 가며 중간에 거쳐간 곳이기도 합니다.
다시 레만호의 맑은 물과 스위스의 맑은 공기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대되네요.
(아래의 모든 일정은 현지시간 기준입니다.)
출국편 인천→프랑크푸르트 : 대한한공 KE905 / 6월 30일 13:25~17:35 프랑크푸르트→제네바 : 루프트한자 LH3674 / 6월 30일 21:15~22:20 제네바공항→로잔 : 스위스국영철도 (SBB/CFF/FFS) / 6월 30일 자정께 도착예정
귀국편 로잔→제네바공항 : 스위스국영철도 (SBB/CFF/FFS) / 7월 7일 아침 제네바→취리히 : 스위스항공 LX2813 / 7월 7일 15:25~16:15 취리히→인천 : 대한항공 KE918 / 7월 7일 20:25~7월 8일 14:15
ORPG 시나리오 종결/중단에, 그간 짬짬이 봐 오던 모 명작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의 초 감동적인 결말에, 폭우에, 여러모로 센티멘털해지는 나날입니다만... 세상이 뒤집어져도 레오나르도 (MPEG 의장) 시계는 돌아갑니다. 제 80차 MPEG 국제표준화 총회 in 미국 산 호세, 이제 코앞이군요.
그런 관계로 내일 오후 5시 45분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향해 출발합니다. 싱가포르항공입니다. 스타 얼라이언스 카드 (그것도 폼나는 루프트한자 걸로) 갖고 있으니 어디 슬슬 또 마일리지를 쌓아볼까요.
그래서... 출장을 앞둔 소감이라면. 지금 저의 심정을 오늘 아침 제 노트북이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만우절의 백미 거짓말은 단 한 건 해서 그거 딱 하나 성공시켰습니다. 모이기로 한 ORPG 모임은 중지되었고, MSN 들어온다던 친구는 매정하게도 오지 않았습니다. 간만에 잠시 늘어져서 하루 종일 게임과 애니메이션 따위에 빠져 있었습니다.
문명 3은 역시 마성의 게임입니다. 꽤 어려운 난이도로 시작했는데 맵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삽시간에 주변국 몇 개를 먹어치우고서 패권국가로 등극, 전차사단 12개를 보유하고 현재는 핵전쟁을 준비 중입니다.
국가체제는 파시즘입니다. 아무리 제가 플레이어지만,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최근 모 마법소녀물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일본 한 방송국에서 무려 4년간을 풍미한 대작을 통째로 구해서 근 한달 넘게 깨작깨작 시간 쪼개 즐기고 있습니다. 참 잘 만든 이야기입니다. 4년간 방영할 만 하네요. 그런데 이 마법소녀들은 4년간 실시간으로 착실히 성장해가는데, 대학원에서 그 절반쯤을 보낸 저는 왜 아직도 이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사람 눈에 안 띄는 데서 "필로소피 닥터 켈소나!" 하고 주문이라도 외쳐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다고 공학박사로 변신은 안 하겠지만.
이크... 또 나태함의 덫에 걸려서 "몇일 뒤에 봅시다" 하고 잠수타는 짓을 반복할 뻔 했습니다;;
일단 오는 길에 있었던 사건을 몇 가지 말하자면...
1) 비행기 환승 미리 두명 나중에 두명 이렇게 나뉘어 오긴 했습니다만, 다행히 모두 시간을 적절히 남기고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원래는, 나중에 도착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오기 위해서, 지난주 모로코 가는 길에 파리에서 이용했던 유학생 포터에게 수송 서비스를 의뢰해 놓았는데, 비행기는 빨리 도착하고, 유학생 본인은 안 나와 있고, 셔틀버스가 코앞에 와있길래 그걸 타고 왔다고 합니다. 전 그것도 모르고 공항 진입로에서 오는 차 세우려고 20분을 동동 굴렀습니다... ;ㅅ;
2) 환승 셔틀버스 싸게 탔습니다. 원래는 한명당 16유로인데, 4명이 타면 약 14유로로 깎아준답니다. 마침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오신 GIST 호요성 교수님 일행과 뭉쳐서 4명을 만들어 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3) 샤를 드골 공항 지붕 콘크리트 지붕에는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저게 붕괴해서 사람이 댓 명 쯤 죽은 걸 알기에, 감탄만 나오진 않더군요;
4) 샤를 드골 공항 카페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 두 잔을 테이크 아웃 하고 20유로를 지불했는데 잔돈을 안 받고 나왔습니다. (=쥬스 한 컵당 약 \12,500) 영수증도 안 받았기에 난처하면서도 부랴부랴 가서 이야기했더니 웬걸, "거스름돈 말이죠" 하면서 영수증하고 거스름돈을 만들어놨다가 저한테 주더군요. 좀 감격했습니다. 말도 잘 안 통했는데...
5) 샤를 드골 공항 면세점 프라다 샤넬 고디바... 프랑스 아니랄까봐 명품 천국. 저같은 서민은 살 거 정말 없더군요.
자, 그럼 MPEG의 마무리,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사진기록들입니다. 중간에 카메라를 빌려 쓴 데다가 비행기에 타고 있는 동안 데이터를 옮겨 놓았기 때문에, 이후의 몇몇 사진들은 아직 제 수중에 없습니다. 나중에 추가로 올릴게요.
Postscript. 초기 사진 포스팅들에, 사진의 설명을 안 달고 그냥 올린 게 몇 개 있었습니다. 설명을 다 달았으니 관심 가시면 다시 한번 확인해주세요.
금요일 전체미팅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었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끝나는 순간 박수라도 터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준비 진행해 준 주최측에 감사한다는 내용이 나올 때 박수가 미리 나오고, 끝날 때는 모두들 조용하게 일어나 짐을 정리해 나가더군요.
이걸로 이번 출장도 막을 내렸습니다.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배울 것도 많은 일주일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대학원 생활에 밑거름으로 삼아야지요. 랄까 원래 쓰라린 기억은 거름으로 삼아야 됩니다. 사사로이 돌이키면 악취만 난다는 점에서 거름과 일맥상통합니다.
오늘 (토요일) 오전 12시 30분 비행기로 마라케쉬를 떠납니다. 남은 건 복잡하고 급박한 항공기 연계 일정이 잘 풀려주기를 바라는 것 뿐이군요. 12시 30분으로 옮길 수 있었던 저 포함 2명은 문제 없지만 나머지 두 명이 걱정입니다. 혹시 몰라서 전원이 공항에 나가, 남는 표가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아래는 금요일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야시장 포스트에도 설명 드렸다시피 막상 구입한 물건의 사진은 찍어두지 못했네요.
그 커뮤니티에 올리신 그 글을 잘 봤습니다.
그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재미로 썼었습니다. 상대의 불쾌감을 고려하지 않고 저만의 재미로...
이제부터는 쓰지 않겠습니다.
이미 어제 밤에 닉네임을 바꿨습니다.
혹시 이 닉도 불쾌감을 느끼신다면 말씀하시길.
참고로 저의 블로그에 사과글을 올렸습니다.
마라케쉬 나이트는 서울 녹사평에 있는 모로코 식당 이름이라고 합니다. 여기 현지에 와서 우연찮게 인터넷 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아무튼.
진짜로 마라케쉬 나이트입니다!
목요일 밤, 저녁식사를 마친 뒤 학생들끼리 마라케쉬 구시가지 (메디나) 의 중심부, 대시장을 찾아갔습니다.
물건 값 깎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가게 주인이 가격을 부르면 일단 절반이나 3분의 1 정도로 불러주는 센스. 그러면 대개 초기 가격의 60~80%선에서 타협이 됩니다.
여기저기 가게 구경을 하고 있자니 상인인지 호객인인지 모를 사람이 한 명 붙어서 가게를 소개하고 다니기 시작하더군요. 한국말에 무지하게 관심을 보이며 호객용어를 적어달라기에 "안녕하세요" "물건 좋아요" "얼마 하실래요" 같은 말들을 발음대로 적어줬습니다.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스마일 씨라고 하더군요.
가게 주인들은 대부분 착하긴 한데, 관행적으로 값을 까마득하게 받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은제품을 구입한 어느 가게에서는 은제품 5개에 3백 디람 (=약 33000원) 을 부르길래, 절반인 150에 하자고 주장하자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이봐요, 진지한 가격을 내놔봐요. 흥정을 하려거든 민주적인 값 (democratic price) 을 제시해보라구요" 하면서 웃더군요. 결국 여러 번 말이 오간 끝에 200디람 (=약 22000원) 에 타협을 봤습니다. 그리고 다른 가게도 대개 이런 식입니다.
참고로 지금 올린 사진들 외에, 금요일 낮에 잠시 같은 곳을 들러서 수수께끼 상자와 거대 6면체 주사위 (모두 목제) 를 구입했습니다. 아직 사진을 찍어두지 못해서, 이건 귀국 뒤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네요.
PS. 여담입니다만 금요일 낮 쇼핑에서는 그리 좋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가격도 전혀 못 깎았고, 500디람 (=약 55000원) 을 줘야 하는데 현금이 아슬아슬해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려다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황당한 꼴을 좀 봤습니다; 카드결제 해준다고 자기 형네 가게로 데려가서 아무거나 사게 하더니, 정말 조그만 은세공품 하나 집어들자 그거 하나에 3백을 부르더군요... (앞서 적었듯 같은 은세공품에 그것보다 큰 것 5개를 묶어서 2백에 샀었습니다)
그 뒤로 좀 혼났습니다. 차라리 혼이라도 나고 깔끔하게 끝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사회성을 더 기르기는 해야겠지요. 100% 제가 잘못해서 뭔가 엎어지는 건 아니지만, 돌려 말하면 제가 과민반응하고 망동한 탓이 0%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요.
아래 글은 어쩔까 지금 고민중입니다. 지우거나 비공개로 돌릴 생각은 안 들고, 그냥 놔두거나 혹은 내용만 적절히 순화시키는 정도로 생각 중입니다.
금요일 전체미팅은 결국 유동적으로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일정 조정을 하시기를 제가 아닌 다른 후배 형이 남도록 일정을 짜셨고, 거기에 따르게 되었습니다. 민폐 끼쳤습니다... 하지만 사실 별다르게 다른 할 일도 없으니 아마 저도 미팅 종료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중간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말이죠.
아무튼, 수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정리입니다.
수요일에는 BSDL측과 대 결전... 을 벌일 줄 알았지만, 우리 쪽에서 나름 스무스한 접근법으로 다가간 덕에 조용하게 끝났습니다. 제가 맡았어야 할 발표의 절반 가량 (BSDL 관련) 을 교수님께서 가져가셔서 RVC 표준에 대한 BSDL의 적합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발표를 하셨고, 그 결과 다음 미팅까지 서로 잘 해보자는 식으로 결론이 닜습니다. 그 결과는 목요일에 핵심실험 (CE, Core Experiemnt) 내용에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저녁에는 MPEG에서 매번 수요일마다 진행하는 소셜 이벤트 (Social Event) 에 다녀왔습니다. 과란타 궁 (Guaranta Palace) 을 간다길래 구시가지의 궁전을 구경가는 줄 알았더니 골목 깊은 데 있는 전통음식점 이름이 과란타 궁이더군요... (무슨 향원정이네 마포가든이네 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자리도 좁아서, 우리 일행이 외국인 세 명과 합석해야 했습니다. 미국 Texas Insrument의 두 분과 스웨덴 Ericson의 한 분이었습니다.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만,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는 스웨덴 무슬림들 이야기였습니다.
스웨덴 무슬림 이야기
스웨덴에도 무슬림이 산답니다. 주로 터키 및 중동계 이민자들로, 스톡홀름에 모스크가 있다고 합니다. 우스개지만, 스웨덴에 사는 무슬림들이 제일 괴로워지는 시기는 바로 여름에 라마단 (금식월) 이 올 때라고 합니다.
금식월 동안에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식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스웨덴에서는 여름이 되면 백야현상으로 해가 지지 않습니다.
(뭐... 사실은 적당히 시간을 정해서 자율규제를 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겨울에 라마단이 오면 해가 하루 두시간밖에 떠 있지 않아서 참 좋을 거라고 하네요)
목요일에는 대부분 마무리가 지어져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CE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 주를 이루었고, (그리고 중간에 대판 혼난 것도 저에게 있어서는 주요 업무로 봐야겠지요?;) 4시쯤 되자 모든 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서 야시장을 즐겼습니다! ...이 이야기는 별도의 포스팅에서.
다만 다른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귀국편 환승일정이 기가 막히게 빡빡해서, 도저히 제 시간에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샤를 드골 공항까지 짐을 끌고 2시간 30분만에 환승한다는 건 사실 대책없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사실 항공권을 구매해준 여행사 쪽에서 다소의 실수로 이 항공루트를 잡은 것이었기에, 그쪽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준다고 해서 기다린 결과, 2명만 2시간 당긴 12시 30분 비행기 (에어프랑스 AF3355편) 로 파리를 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다음과 같습니다. 1) 1진이 오후 12시 30분 비행기로 모로코를 출국합니다. 이 사람들은 일행이 가진 모든 기내 위험물품 (ex. 화장품, 샴푸 등 100ml 이상의 액체, 제 애용 스위스 나이프) 을 짐으로 부치고 파리로 향합니다. 파리에서 미리 티켓을 끊으면서 2명이 더 온다는 사실을 항공사에 알립니다. 2) 2진이 오후 2시 20분 비행기로 모로코를 출국합니다. 이 사람들은 짐 찾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짐을 비행기에 들고 탑니다. 도착하는 대로 공항간 셔틀 리무진 버스로 최대한 빨리 샤를 드골에 도착해 합류합니다. 3) 파리 샤를 드골 공항 도착 이후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하는 일정은 공히 같습니다.
참 왜 이리 되었나 싶습니다... 난처하군요. 일단 저는 먼저 출발하는 1진에 속해 있습니다. 별 문제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제가 부족하다고 한 소리를 듣는 것에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제가 부족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게 어떠한 의무가 부여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제게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그것을 수월히 이행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기피하고자 하는 마음은 우러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이루어야 할 산적한 과제들에 힘겨워하지만 그것을 이윽고 즐겁게 이루어나갈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에게 부족하다고 한소리를 하면서 무엇이 부족한지는 스스로 체득하라는 무책임한 지적을 싫어합니다. 저는 저에게 의무를 부여하면서 제가 그것을 수행하는 동안 그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즐겁게 놀겠다고 태연히 말해오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러면서 그 의무에 제가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 이외에 그 어떠한 가치도 부여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싫어합니다.
MPEG에 와서의 단상이었습니다. 저 혼자만, 금요일 전체미팅이 끝날 때까지 체류하는 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례적으로 빨리 끝나면 오후 6시, 늦으면 밤 10시쯤 끝난다고 합니다. 이미 오기 전부터 이번에 끝까지 남겠다고 호언장담했었고, 같이 온 다른 사람들은 모두 끝까지 남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여차하면 제가 혼자 있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제가 그러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각자 마라케쉬에서의 시간을 보낼 것임도 이미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남겠다는 사람 중 하나가 "우린 즐겁게 놀기로 했다? ^_^" 이러면서 대놓고 히죽하는 걸 보니까 기분좋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싹 날아가버리는군요.
심정적으로든 엎고 싶었는데 군번이 안 돼서 참았습니다. 네. 아무리 박사과정 진학예정자라도 전 연구실 내 최연소자고, 저 박사 졸업할 때까지 동갑내기라도 볼 수 있으면 다행인 사람 맞습니다. 더군다나 저 말을 한 사람은 기수도 나이도 저보다 많은 명실상부한 선배입니다. 말할 명분 없습니다. 꿇어야 합니다.
지금 마음 가다듬고 글을 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짜증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래요. 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출장을 와도 기회가 충분히 된다면 자유롭게 이 이국의 거리를 만끽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제가 누릴 수 있으며 누리고자 하는 많은 즐거움을 누군가 빼앗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기를 바라고, 그 일에 뚜렷한 가치가 부여되기를 바라며 그것이 다했을 때 무언가 내가 얻는 것이 눈에 보이기를 바랍니다.
돌려 말하자면 가치나 보상조차 부여해주지 않고 뭔가 시킨다면 저, 그건 정말로 싫습니다.
생의 모든 순간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이 즐겁다는 것도 마냥 놀고 먹으면서 즐겁겠다고 생각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도전을 준다면 받아들이고 그걸 넘기는 게 저의 즐거움이지만, 그걸 왜 넘겨야 하는지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로 이겨내야 한다면 전 그걸 언어도단 이상으로 생각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아직 미숙한 건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비틀린 면을 제가 본 건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냐고 누구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그러지 않습니다. 저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일단 미숙함이 분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유일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PS. 이 포스팅은, 시일이 지나서 혹시 부끄러워지면 자진해서 비공개로 내리겠습니다. 이올린에 발행도 안 합니다. 널리 알려서 좋을 것 없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지우겠다고 말하지 않는 건 여기 적은 내용이 적나라하다고는 하나 제 진심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79차 MPEG 회의장, 팔레 데 콩그레의 플레너리 룸 "살레 데 미니스트레 (장관홀)" 입니다. 모로코 시간 17일 9:00입니다.
MPEG 미팅은 여전히 파천황적인 스트레스와 함께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쪽 기고서들 중에 (하필이면 제가 발표 담당인 기고서가) 꽤나 전략적이고 공격적인 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걸 보고서 우리가 그 기고서 안에서 몇 마디 깎아내렸던 BSDL 분야의 대학교에서 엄청나게 야멸찬 어조의 반박기고서를 올렸습니다.
반박이라고 붙여 놓은 자기들 본문 내용이 온통 빨간 글자로 쓰여있고, 내용을 다 요약해보면 "너희들 말 다 틀렸다. 우리가 잘났고 너희들 거 너무 못만들었더라. 니마 즐" 정도더군요.
그 덕에 오늘 기고서 발표과정에서 한판 붙어야 할 것 같군요. 부담 팍팍 받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4번의 미팅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의 나날입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그다지 미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한 적이 없었고, 시류에 이끌려 잘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곤란한 것으로 여기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나름 자발적으로 노력을 하려는 의지는 생겼는데, 상황 자체가 힘들고 또 그 노력이 100% 발휘가 안 되면서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한 건 아주 잘했다 싶은데 못한 건 그 이상 없을 만큼 후회가 되네요. 의욕만 넘치고 실제 행동이 따라가지 못해서 벌어지는 사태 같습니다. 제 개인 역량이 발전하는 과정에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당장 심적으로는 좀 괴롭네요.
오늘도 사진은 아래에 몰아서 올립니다. 왠지 미팅 사진보다는 먹는 사진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1. Ad Hoc 그룹 미팅 무난하게 끝났습니다. 다만 스위스 공대 인간들 뇌에 뭐가 들었는지는 여전히 짜증 섞인 안개 속입니다.
2. 중화요리 저녁에 중국식당 - China Garden - 에를 갔습니다만... 역대 MPEG을 다녀본 이래로, 중국 식당에 가서 실망해본 적은 중국 갔을 때밖에 (!) 없었는데 말입니다... 어두침침한데다가 음식에서 이상야릇한 향이 나는 바람에 대실패로 결론 났습니다.
3. 택시 이 동네에는 그랑 택시 (대형택시, 벤츠) 와 쁘띠 택시 (소형택시, 기타 소형차. 현대차 일부 있음) 가 다닙니다. 그랑 택시는 미터기가 없이 사전 흥정을 해야 하고, 쁘티 택시는 미터기가 달려있는데 잘 안 돌립니다. 그랑 택시는 5명까지, 쁘띠 택시는 3명까지는 합승하는 게 관례랍니다. 중국식당 다녀오는 길에 두 종류 택시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길 잘 모르고 바가지 씌웁니다.
안녕하세요. 모로코 마라케쉬의 리아드 모가도르 오페라 호텔에서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현재 여기는 밤 9시 반을 넘기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프랑스의 홀리데이 인 호텔을 떠나서,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출발하는 에어 프랑스 편으로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기대를 여러가지로 뛰어넘는, 참 여러가지 의미에서 대단한 나라입니다...;;
건물들은 기대 이상으로 깔끔합니다. 도시의 활기도 기대 이상으로 넘치는군요. 호텔 시설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좋습니다. 게다가 방 배정이 잘 된 덕에, MPEG 출장 사상 최초로 혼자 방 하나를 쓰게 되었습니다! 자유로워서 좋습니다. 넓어서 좋구요.
그런데 시내 전체가 매연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걷기만 해도 코가 막힙니다. 차들이 시커먼 매연을 뿜으면서 다니는데 아주 환장할 지경입니다; 게다가 매연으로 모자라, 어딜 가나 공기에 노숙자 냄새 같은 퀴퀴한 내음이 배어 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 물이 귀해서 잘 안 씻는 거 아닐까요...
영어는 25%밖에 안 통합니다. 혹시 호텔에 비치된 치약이 있냐고 물었더니 귀중품 금고를 수리하러 오는 지경입니다. (다행히 금고가 정말로 고장나 있긴 했습니다) 이게 아니라고 열심히 말하자 줄창 모로코 사투리 프랑스어로 설명해주는 센스의 소유자들이 호텔 직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사정도 생각보다 좋지 못합니다. 호텔 전체에 무선 공유기가 1층 로비에 단 한 개 뿐이라는군요. 벽면에는 유선 인터넷 포트가 있지만 제대로 되는 곳이 몇 군데 안 됩니다. 벽면 포트가 정상 작동하는 몇 군데 중 하나가 제 방이었고, 그래서 지금 글을 쓰는 노트북 옆에는 한국에서 공수해온 최신 유무선 공유기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중계 무선망을 구성해 운용 중인데, 꽤 쓸만하네요. 단지 라우팅이 너무 되어서 딜레이가 심한 탓인지, 인터넷 전화는 잘 안 됩니다. 연결도 그다지 안 될 뿐더러 기껏 연결되어 통화하다가도 수시로 끊기네요.
그렇잖아도 카메라 때문에 속상한 제게 대못을 박으시는군요;;
2005년 12월에 45만원이라는 바가지를 쓰고 산 펜탁스 S60 (6백만화소) 입니다. 지난 10월 출장을 전후해 원거리 초점을 못 맞추는 상당히 짜증나는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갈아치울 때가 온 모양입니다.
드디어, 제 79차 MPEG 미팅 출장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알려드렸다시피 최종 행선지는 모로코의 교역도시로 사하라 사막의 관문이라고도 불리는 마라케쉬입니다.
내일 대한항공 KE901편으로 중간 기착지인 프랑스 파리를 향해 출발합니다. 파리에 도착해서 현지에서 1박을 한 뒤, 다시 에어 프랑스 편으로 모로코 마라케쉬를 향하게 됩니다.
긴 여정이 될 것 같습니다. 유럽행 이코노미 클래스의 악몽은 계속되는군요. 루프트한자는 정말 편했고 오스트리안 에어라인은 쥐약이었습니다. 국적기인 대한항공은 어떤지 기대해 봅니다.
일주일 간의 체류 환경은 나름 편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공식 숙소의 대상이 비교적 고급 호텔 중심으로 짜여졌으니 편하기는 어지간히 편할 거라고 기대해 봅니다. 더군다나 회의장도 호텔도 모조리 걸어서 10분 거리 안에 있다고 하니까, 예전처럼 택시나 버스를 타고 붕붕거리며 일대를 달려야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미팅 자체보다는, 일정에 쫓겨서 마라케쉬 시내 관광이나 할 수 있을지 하는 소박한 (?) 걱정이 들긴 합니다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요. 여차 안되면 귀국길에 공항 면세품으로 떼우면 되는 겁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협력업체인 휴맥스에서 오신 이 모 부장님께서 교수님을 꼬셔서 평일 유희를 나가려 벼르고 계시니 어떻게 거기에 잘 끼어보는 수밖에요... ;ㅅ;
현지의 인터넷 사정은 비교적 나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연구실에서 이번에는 유무선 공유기를 한 개 사서 갈 예정이므로 통신 환경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이라면 보잉이 사업 철수를 선언한 탓에 올 1월부터 기내 인터넷 서비스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것만 되었다면 강력히 우겨서 루프트한자를 타자고 건의했을 텐데 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현지에서의 꾸준한 포스팅은 약속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힘 닿는 데까지는 일단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던 것이 지난 7월 24일... 그러니까 딱 4개월 하고도 일주일 전이군요.
안녕하세요. 켈소나입니다. 오래간만입니다. 켈소나입니다 ;ㅁ;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뻔뻔스럽게도 돌아왔습니다;
7월 미팅이 끝나자마자 몇일 쉬자, 하고 1주일 가량 늘어졌던 게 화근이 되었는지, 이후 10월 MPEG 미팅을 거쳐 11월께까지 거의 정신을 반쯤 내놓은 채 지냈습니다. 블로깅이 쉬어버린 것은 그 탓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변명을 하자면 그 동안 무슨 귀신이라도 들린 마냥 정신이 나간 채 지냈습니다. 심지어 10월 출장 직전에는 출국 1주일 전까지 정시 칼퇴근을 하면서 "어라, 나 이렇게 한가하게 보내도 되나...?" 하고 주위에 떠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미팅은 화려하게 망쳤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정신을 좀 차렸습니다. 부디 이 기분 오래 가기를.
그럼 7월에 포스팅이 끊긴 이후로 주요한 일상소사를 보고드리겠습니다...
자세히 봅니다.
먼저, 10월에는 제 78차 MPEG 미팅이 중국 항저우에서 열렸습니다. 기고할 목적으로 MPEG-2/4에서 P-VOP을 지원하는 RVC 디코더 디스크립션을 작성했습니다만, 실제 프로그램 작성에서 온갖 난관을 만나는 바람에 결국 일정에 맞추지 못해, 현지에서 기고서를 철회하고야 말았습니다. 위에 적은 태만 증후군의 탓입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더욱이, 꼴보기싫은 스위스공대 (EPFL) 에서 공세를 강화, 복호화기 개요 모델 (Abstract Decoder Model, ADM) 이라 불리는 해괴한 개념을 표준에 투입한 데다가, 그 구조가 고스란히 그쪽 기술 (CAL) 로 낙점되어 버렸습니다. 당장 우리가 잃은 건 없다지만 앞길이 상당히 전도다난해졌습니다. 참고로 이 회기에 RVC의 표준번호가 ISO/IEC 23001-4 CCR 및 23002-4 VTL로 분산 확정되었습니다.
10월 30일,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 면접이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긴장해서 들어갔는데 단 세 마디 - "어느 교수님 밑에 있나?" "병역은 미필이고?" "됐네, 나가보게." - 로 끝났습니다. 결과는 합격입니다! 이로서 올해부터는 박사과정 학생으로 진학합니다.
11월부터는 석사과정 졸업을 위한 학위논문 작성으로 약 1개월 보름 가량을 바쁘게 보냈습니다. (사실, 정신 차리고 쓰기 시작한 건 11월 중순부터입니다만...)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했던 RVC 고유 기술 (2006년 7월까지의 버전) 을 주제로 하여, 한번 영어로 논문을 써보겠다고 1개월을 붙들고 있다가 좌절했습니다. 결국 국문으로 방향을 전환한 지 보름만인 12월 18일 1차 탈고를 하고, 12월 21일 교수님 세 분의 최종 승인을 받음으로서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현재는 1월 10일까지가 기한인 하드커버 출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오는 1월 12일부터는 제 79차 MPEG 미팅을 위해 모로코로 출국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무려 모로코, 아프리카권입니다. 항공편은 프랑스 파리를 거쳐 가게 됩니다. 특히 가는 길에는 비행 시간 문제상 파리에서 1박을 하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개선문이나 에펠탑이라도 보면서 다같이 저녁이나 먹자" 고 하십니다; 이 출장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조만간에 별도의 포스팅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2007년입니다. 신년 첫날 "아자!" 하고 시작하는 게 참 어떻게 보면 작심삼일의 전형 같고, 실제 2006년에도 이렇게 새해 첫날 시작했다가 삼일은 아니라도 7개월만에 흐지부지된 전력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다르겠지 하고 다시금 스스로를 믿어 봅니다.
올해 3월부터는 박사과정으로 진학합니다. 그에 걸맞게 일도 개인도 책임감을 가지고 해나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네트워크 켈소나 시즌 2 "REGIME CHELSONA", 시작합니다.
PS. REGIME CHELSONA의 의미에 대하여
REGIME CHELSONA는...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직역해서 "켈소나 정권" 입니다. (...) 올 한해 (그리고 향후 계속해서) 책임감 있고 주도적인 인생을 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래서 책임감 있는 블로깅을 위해 여행기, 출장기 같은 글의 장기 연재는 앞으로 포기하고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즉 태국 방콕 출장기도 포기합니다... 마침 최근 10월 미팅까지의 사진을 인화하면서 추억이 새록새록 깨어났사오니 언제 1년치 출장, 다이제스트로 포스팅 하도록 하지요.
나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많았지만, 포스팅을 올리거나 사진을 정리하고 있을 시간조차도 없었군요. 죄송합니다;;
지금 MPEG 7월 출장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9시가 데드라인이라, 새벽 5시까지 연구실에서 철야를 했습니다. 사실 목요일부터 하루 밤새고 하루 집에서 쉬고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구요. (...)
제가 맡은 일들은 거의 끝냈습니다만... 다른 사람들 일 중 일부가 기한에 못 맞춘 게 있습니다. 그 쪽은 좀 걱정입니다.
이번에도 해외 출장에 동행합니다. 일정은 7월 14일 (금요일) 부터 7월 22일 (토요일) 까지.
제헌절이 (그것도무려 연휴가) 끼고, 심지어 생일날이 낍니다.
특히나 생일인 22일은 귀국날이라 하루 조--옹일 비행기 안에 있을 것 같은데, 그야말로 덜덜덜입니다. 으우;
이번에 가게 되는 곳은 지난번의 스위스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오스트리아입니다. 시차도 같습니다.
심지어 중간 기착지 (프랑크푸르트) 도 같고 거기까지 타고 갈 항공기 (루프트한자 LH0712) 도 같습니다.
가게 될 도시는 클라겐푸르트라고, 한국으로 치면 광주 쯤 되는 동네군요. 카린샤 주의 주도라고 하덥니다. 전설에 의하면 용사가 드래곤을 때려잡고 지은 도시라고 하던데요. (...)
아무튼 보다 자세한 입출국 일정 및 여행 관련 사항은, 출국 직전인 내일이나 모레쯤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1시간이 넘게 공중에 떠있는 비행기도 신기하지만
그 높은 하늘에서 인터넷이 되고 전화도 되는 것은 더 신기하고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것은 경이!
그런걸 신기해하는 사람이 외계인 취급 받겠지만
여하튼 멋져~
스위스에 있는 동안 우울한 일보다는 행복한 일이 많이 있기를...^^
힘내자... 아자아자...
내일 오후 2시, 인천공항에서 루프트한자 항공 LH0713편을 이용, 환승지인 프랑크푸르트로 떠납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시간 일요일 오전 6시경 (현지시간 토요일 밤 10시경) 제네바에 도착, 1박한 뒤 다음날 몽트뢰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다시 고생문 두둥~ 이라는 느낌이긴 하지만, 힘내서 다녀오겠습니다. ;ㅁ;
사실 경험이 쌓이는 건 부정할 수가 없더군요.
몇일 전 태국 방콕에서 반 탁신 총리 데모대가 질주하는 걸 보고 "억, 시암 거리다!" 하고 그 길거리를 알아보고 만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이런 게 견문이라는 거겠죠. (먼산)
물론 유럽인 데다 이번에는 일정이 빡빡하니 그리 시내를 돌아다닐 기회는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날 금요일은 아예 회의참석 않고 오전 중에 제네바로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그 나라 공기를 마시고 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경험이겠죠. 그것도 제 돈 안 내고 말입니다
오는 길에는 물론, 가족과 지우 여러분들을 위해 조촐한 선물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개인 소장품으로는 비싸지 않다면 스위스 아미 나이프 (속칭 맥가이버 칼) 하나쯤 정품으로 장만하고 싶은데...비쌀 것 같아요. 그게 문제입니다. ㄱ-
(랄까 요새는 시대변화에 맞추어 LED 라이트에 256메가 USB 메모리까지 탑재한 물건이 나왔다는 소문도...)
여차하면 연구실에서 받은 여행 수당 경비에서 갹출해 질러버릴까 싶습니다. 원래 지름신께서는 특히 공금을 좋아하시거든요. (...)
아무튼, 이정도 쓰겠습니다.
태국 때의 고생을 돌이켜, '현지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같은 지키지도 못할 무책임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여유가 되면 한마디쯤 쓰겠지만요. 바빠서 여유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돌아와서부터는 정말 1일 1포스팅으로 돌아가야지요... 아하하 ;ㅁ;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8일날 뵈어요 ㅇㅅㅇ/
Postscript.
들으면 아실 그 분께. 이건 명령입니다. 저 올 때까지 추가 5편 가량 연재 안 하시면...
알아서 하세요. 흥.
몽트뢰(Montreux)
※ 본 이미지는 금번 출장 내용과 일체의 관계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태국 나가 고생하고 온 게 엊그제 같은데...
교수님 : "너희 둘이서 가야겠다. 불안하긴 하다만 이 내 불안을 불식시켜다오."
......하여,
4월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이어지는 제 76차 MPEG 표준화 회의 참석을 위해, 오는 4월 1일자로 출국합니다!
장소는 스위스 몽트뢰, 수도 제네바와 함께 몽트뢰 호를 끼고 있는 호반도시입니다. 직항 항공편은 없기 때문에 부득이 제네바까지 비행기로 간 뒤 열차편으로 몽트뢰까지 이동하게 될 것 같습니다.
출국, 귀국 항공편은 현재 예약 관계 상 미정입니다. 다음주 이맘때면 확정될 것 같네요; 귀국일자는 4월 8일 혹은 9일. 현지에서는 7일 혹은 8일에 출발하게 되겠지요. 아무래도 항공권은 7일 출발 쪽이 구하기 쉬운 것 같지만, 교수님이 왠지 저희들을 8일에 보내고 싶어하시는 듯 합니다. 본인께서는 7일에 들어오실 거면서...(...)
뭐랄까, 이번 MPEG 출장은 그야말로 중간보스전 느낌입니다. 태국 출장은 그냥 필드몹 정도로 생각되는군요.
일단 물가가 비싼 곳이고 잘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태국 때처럼 호화로운 식사나 숙소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방콕 로열 오키드에서는 공짜로 나오던 점심 식사도 아마 사비로 (랄까 결국은 출장비 계상하겠지만) 사 먹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태국에서 매일 제공되던 부페식 점심과, 수요일 저녁에 있었던 전통 무용수를 동원한 대규모 리셉션 같은 게, 모두 태국 관광청 후원으로 가능했다는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한국과는 시차 8시간! 2시간으로 만만했던 태국과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현지에서 오전 9시면 한국은 오후 5시. 현지에서 오후 6시면 한국은 오전 2시. 낮밤이 뒤바뀌는 생활이니 전화통화라든가 시차적응이라든가 애로사항이 꽃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출장인원이 교수님 제외 저 포함 2명뿐인 건 최악의 악재로군요... 대체 얼마나 일거리에 시달릴지... OTL
물론 경험치는 경험치 대로 오르겠지만, 치요가 유카리 선생 차에 탄 것도 그렇게 치면 경험치 아닙니까? "교수님은 작업 기일을 좀 더 늦추시는 편이 좋아요... 조금만 더 여유롭게...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이...!!! 디-버-그--!!!!"
아무튼, 보다 확실한 건 항공편 일정 따위가 확정되는 대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__)
Postscript.
행여라도 부럽다고 질투의 시선 보내실 거면... 기껏 나간 만리타국에서 1주일 동안 구경은 한톨도 못하고 회의장만 들락거리다 오게 되는 처량함을 이해해 달라는 것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orz
Postscript 2.
랄까, 태국 출장기, 아직 공항 도착한 시점까지밖에 못 올렸는데...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언제까지 그렇게 살텐가
...랄까, 멋대로 태터 툴즈의 위치 입력 시스템 최상위에 '국제선 여객기' 라거나 집어넣어 버렸는데 괜찮을까나요...(덜덜) 하지만 이 사진들 찍는 내내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무수한 나라들 상공을 오간 통에...;ㅁ;
랄까 틀린 말 아니잖아요, 뭐. 그냥 됐다고 치렵니다. 혹시 압니까. 저 말고도 누군가가 이 위치정보를 유용하게 써먹을지...
아무튼, 길어질 듯 해서요. More기능으로 접어둡니다.
TG659편의 추억
2005년 1월 14일 토요일
타이항공 인천발 방콕행 TG659편 기내
747-300 이코노미석 기내 모습
보잉 747기를 처음 타보는 건 아니에요. 예전에 제주도 갈 때 타 본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2층 라운지에 올라가 본다는 제 필생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시도해보지는 않았는데, 이코노미석 승객은 애초에 비지니스석과의 경계도 함부로 넘나들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쳇, 그래요. 2층 따위 퍼스트 클래스의 전유물이다 이거죠. 두고봐요. 에어버스 A380만 도입되면 그따위 2층, 대놓고 올라가줄테니까.
(참고 : 최신예 A380기종은 좌석 전체가 2층 ☆ 이코노미석까지도 복층일 게 뻔하니까 올라가봐야 의미 없음 ☆)
최말석!!!
그래서, 이건 마감 시간에 촉박해서 창구에 도착한 우리에게 주는 보복인 것입니까...
이코노미 클래스 맨 끝, 화장실 바로 앞의 4개 석이 저희 연구원 4명에게 배정되었습니다. 이거, 앞에서부터 선착순이었던 겁니까... ;ㅁ;
좌우는 항공기의 꼬리 쪽 비상 탈출문. 바로 뒤는 통로고 그걸 넘어서면 6명이 동시 이용 가능한 화장실 블록이 있습디다...
랄까 솔직히, 냄새가 났어요!! 진짜에요!! 5시간 내내 미묘한 냄새가 났다구요!! ;ㅁ; 게다가 재앙은 그게 끝이 아니니...
좁다!
국제선 여객기를 14시간 동안 앉아서 탄 사람이 도착지 공항에서 허벅지 혈전증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해주는 이 좁은 좌석 하며...
더군다나.
수하물 캐리지가 없어!!!
아니 어떻게 말석이라고 수하물 보관함이 없을 수가 있냔 말입니다!!!
이건 대체 타이항공의 책임이냐 보잉의 책임이냐 묻고싶어지는 가혹한 처사.
결국 짐을 좌석 뒷편에 몰아넣는 초유의 사태 발생
대충 넣었더니 승무원이 지나가면서 더 꽉꽉 안으로 밀어넣으라고 하더군요. 이착륙 시에 쏠리거나, 서빙 카트에 걸리적거린다고... (그러니까 천장 캐리지를 내놧!)
그런 저희들의 불만은 깔끔히 무시한 채로.
비행기는, 이륙했습니다.
영종도 (...일까?;)
이륙순간의 모습을 담은 창문 밖 AVI 영상도 찍었는데, 인코딩에 시간이 걸리니 나중에 별도로 올리기로 합시다. 음음.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무엇을 했냐 물으시면...
1. 처음 두 시간 동안은 작업
그때 아직 현지에서 발표 근거로 삼을 기초 프로그램 및 기술 사항이 완성 및 확정이 안 되어 있던 터라, 계속 RVC 코덱을 뜯었다 돌렸다 하면서 테스트를 해야 했습니다. -_-;
기내에서 서비스 된 태국산 코카콜라
(뒷면에는 영어로 Coca-Cola라고 제대로 쓰여 있습니다)
작업 도중 기내식이 나와서, 노트북을 끄고 화면을 덮은 뒤 그 위에 쟁반을 놓고 먹었습니다.
꽤 먹음직
닭고기와 소고기 두 가지가 나왔습니다만, 옆자리에 앉은 후배 형과 각각 다른 메뉴를 시켜서 섞어 먹는 센스를 발휘.
어느 쪽이든 다 맛있더군요. 위의 사진 위쪽 중간에 보이는 하얀 색은 요구르트 비슷한 것으로, 미묘한 맛이 났지만 꽤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 같이 나온 김치가 꽤 제맛이었다는 게 놀라움이었죠. 이거 태국 국적기인데.
그리고 식후에 와인 한 잔
식후에 나온 와인. ...뭐랄까, 기내에서는 음주 못 하는 거 아니었나 싶어서 좀 놀랐습니다.
그래서, 맛은 어땠냐면요.
Only 쓴맛
...단맛도 심지어 알콜 맛도 느껴지지 않는 그냥 쓴맛. 못 마셔 줄 건 아니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습니다;
이게 인터내셔널한 와인의 맛인 걸까요? 포도맛이 좀 나주기를 바랐는데;
2. 나머지 세 시간은 사진을 찍거나 책을 보거나
그리고 끝끝내 배터리가 잔량 제로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비지니스나 퍼스트 클래스에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코노미 클래스에 220v AC 전원은 없습니다. 화장실에 가면 헤어드라이어용이 있지만 그렇게까지 비굴하게 IT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때만 해도 말이죠)
그래서 나머지 시간은 가져간 책을 보거나, 혹은 창 밖 사진을 찍거나 했습니다.
일단 가져간 책에 대해서라면, 원래는 3권을 들고 갔지만 올 때까지 다 본 거라고는 이때부터 보기 시작한 것 한권 뿐이었습니다. "작안의 샤나" 2권. 영시미아 소년과 염발작안에 하늘을 날고 괴력에다 로리 츤데레인 플레임헤이즈 샤나가, 고교생 둘을 미모로 꼬셔서 그에 빌붙어 무차별 폭력을 감행하는 나이스한 누님을 상대로 치고박고 싸우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미묘하게 왜곡)
그리고 창가석이 아니었음에도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던 나름의 이유라면, 앉은 자리 양쪽 비상탈출문 쪽이 꽤 넓게 비어 있어서,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수시로 몰려와 끼리끼리 담소를 나누곤 했거든요. (개중에는 웃통 벗고 창가 2개좌석을 통째로 차지해 누워서 여행한 아저씨도... 참으로 국위선양 하셨습니다 -_-;)
그리고 문에도 창문이 하나씩 있죠. 제가 이 비행기에서 창 밖으로 찍은 건 대개 그렇게 찍은 사진들입니다.
아래는 사진 중 엄선된 대표작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장장 5시간 30분의 지리한 여정이 지나간 끝에...
방콕 상공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전벨트 착용 등이 들어와 있고.
얼마간 선화를 하더니,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
방콕 국제공항
그렇게 해서, 저는 4천 km 이상 떨어진 미지의 도시, 방콕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외국공기를 접한 순간, 제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다음편 : (3) 방콕/메남 편
미지의 환경, 타임 슬립을 방불케 하는 환경의 격변으로 인해 찾아오는 혼란!
"지금 이러고 있으면 정신병자 취급 받겠지...(벗는다)" 심지어 지나가는 풍경은 내가 알던 그 방콕이 아닌 듯 한데. 이윽고 도착한 숙소에서 받은 몇 차례의 충격! 만리타국 컬쳐 쇼크로 점철된 출장기!
근일 포스팅됩니다. (본 차회예고는 사실과 많이, 많이, 매우 많이 다릅니다)
실은 이번에 관련 사진을 모조리 DVD 한 장에 구웠습니다. 동기 형님으로부터 받은 사진까지 포함하니 사진 용량 총계가 3.2기가!
이 무시무시한 용량을 다 올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고민 끝에, 엄선한 몇몇 사진들만 정리해 올리기로 했습니다. 태국의 진수를 모두 보여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오늘부터 차근차근히 정리해나가겠습니다. 대략 1~2일에 1건씩 올릴 예정이구요. 포스팅은 하루 단위보다는 장소나 일거리 단위로 나누겠습니다. 모두 해서 7~12건의 포스팅을 예상 중입니다.
출발의 그날 그 순간
2005년 1월 14일 토요일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이른 아침 인천공항
8시까지 집합하기로 한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부모님게서 새벽에 차를 태워주셔서 편하게 왔죠.
도착 시간은 한 시간이나 빠른 7시쯤. 간단하게 공항 내 스낵바에서 핫도그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공항 핫도그, 맛있더군요;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 좋았습니다만
오전 7시 40분쯤 방장을 만나서 다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머릿속을 퍼뜩 스쳐지나가는 생각 한 가지.
그런데 나, 여행허가서 가져왔던가?
...에- 여행허가서라는 건 그러니까 대한민국 병무청이 군대 안 가고 감히 외국에 주제넘게 나가려는 청년들에게 선심쓰듯 발급하는 해외 여행 허가 필수서류입니다.
발급받게 되면 2장이 한번에 나오고 한 장은 여권신청시, 한 장은 출국시에 제출해야 합니다.
가방 탐색.
(이미지 영상)
......
병무신고사무소로 전력질주 결정!!;;
한가지 굉장히 피곤한 문제는...;
타기로 한 타이항공의 발권수속장은 공항의 K열, 즉 왼쪽 끝.
병무신고사무소는 공항의 A열과 B열 사이, 즉 오른쪽 끝에 있다는 겁니다.
어쩌겠습니까, 국가의 법칙에 묶인 이 가련한 미필 국민이;;; 공항 횡단을 하라면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행히도 사무소에서 여권에 도장 받고 출국신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저같은 경우 상당히 자주 있는 모양이군요. 직원의 대응솜씨가 아주 익숙했습니다.
켈소나와 연구실 일동의 짐, 짐, 짐
우여곡절 끝에 항공권 발권을 했습니다. 줄이 심각하게 길더군요. 약 20분을 기다려 수하물을 맡기는 등 수하물 처리를 하려고 하니 직원이 난처해하더군요. 비행기 떠나기 한시간 전에는 와 줘야 한다고...;;
수속하고 있는 동안 내내 '탑승수속 마감됩니다' 라고 안내방송을 하더군요.
타이항공 이코노미클래스 발권장
그러고서 출국장으로 향했습니다.
여권과 항공권을 체크한 것까지는 OK. 세관에 신고할 물건은 딱히 없으니 신고소도 건너뛰고 바로 보안검색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설친다고 무려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검색대를 한 장 더 찍은 게 화근. 그 직후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남녀 직원 한 명씩이 다가와 저를 압박하면서 진중하니 말하길, "이곳에서는 사진 찍으시면 안됩니다."
......아, 아니, 찍지 말라는 안내문 없는지 확인하고서 찍은 건데!!!;
어쩐지 찍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무지무지 들어서 그렇잖아도 확인했다구요!! 물론 약간 대충 슥 둘러본 것 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찍지 말라는 는 표지판은 못 봤는데......
...라고 항변해봐야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기에.
"삭제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오기에, 공항에서 그때까지 찍은 사진을 날릴 수는 없어서, 액정을 사무직원에게 보여주며 거기서 찍은 3장을 확인 받고 다 날렸습니다. 지운 부분 앞뒤로 무관한 사진들이 이어지는 걸 보고서야 직원들이 물러나더군요.
그 요란만 안 떨었으면 미리 찍은 2장은 보존했을 텐데 말입니다 -ㅅ-
아무튼.
사진 삭제 뒤 들고 있던 가방과 옷, 차고 있던 시계 및 지갑 등을 모조리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놓고, 게이트를 지나 금속탐지기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를 받고 짐을 찾으려는데 가방을 가리키면서 이게 제 가방이 맞냐고 묻더군요. 맞다고 하니 따로 조용히 부르덥니다.
뭔가 또 심상찮은데 싶어서 갔더니...
들고 가려거든 타이항공 발권장에서 수하물로 부치라고 하기에.
하지만 탑승 수속 시간이 5분 정도밖에 안 남아 있어서.
...버리고 왔습니다. 직원이 다시 찾을 생각은 말라고 친절히 안내해주더군요.
아무튼 그 뒤 출국신고를 하자 드디어 탑승장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사다난했습니다. 아마 평생 못 잊을 거에요... ㅠ_-
탑승장 풍경
그리고 여기서 교수님을 포함, 모든 일행이 완전 합류했습니다.
모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시간을 맞추어 TG659편 출발장소인 31번 게이트에 줄을 섰습니다. 나가는 길에 면세점에서 뭘 사 봐야 전혀 의미없다고 생각해서, 주변에 있는 가게들에는 눈길도 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종류의 가게들이 입주해 있는지조차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어요.
Gate no.31
머지 않아서 탑승이 개시되었습니다.
우르르 몰려나가는 사람들. 길쭉한 탑승권을 내밀자, 거의 전부를 뚝 끊어서 잘라 가고, 손에 남는 것은 손바닥만한 종이 쪽지. 편명과 좌석 번호가 간략히 적혀 있는 보딩 패스 (Boarding Pass) 였습니다.
그렇게 티켓을 받아들고...
게이트 블록을 지나서,
이윽고, 저는 마침내, 난생 처음으로 타 보는 국제선 비행기에 오른 것입니다!
타이항공 TG659편 (B747-300)
다음편 : (2) 태국행 기내편
"항공사는 우리를 버렸다!" 가혹한 환경에 분노하는 연구생들. 그런 그들에게 항공사에서 제공한 것은...? 7천피트 상공에서 공산주의 국가의 항만을 대놓고 촬영하는 스펙터클 항공여행기! 근일 포스팅됩니다. (본 차회예고는 사실과 많이, 많이, 매우 많이 다릅니다)
무사히 잘 다녀오시길 빌겠습니다^-^ ( 덧 터키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고 맛있다네요~/ㅁ/ 나름 위안을 삼으시길...?;;)
음 저 비행기를 대상으로 테러단체에 의뢰를 해달라는 것으로 알고있었습니다...(멍)
뭐 중책을 충분히 감당하시리라 믿습니다.